김서방이 아꼈던 작은 인간 이야기 1
김서방은 애가 닳았다. 밥솥에 붙어 계속 눈동자만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며 동동거렸다. 작은 인간 때문이다.
작은 인간은 저녁 7시면 집 대문을 여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저녁 8시, 9시, 10시... 새벽을 넘길 때도 가끔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작은 인간의 눈동자는 텅 빈 채 생기가 하나도 없었다. 어떤 날들은 현관 앞에 멍하니 서있을 때도 있었고, 보통은 신발을 벗자마자 침대로 비틀거리며 걸어가 그대로 고꾸라져 쌕쌕 숨소리만 내며 잠에 취해가는 모습을 본 지 벌써 몇 달 째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김서방은 안절부절못했다.
김서방과 작은 인간이 살고 있는 이 집은, 방이 한 칸 남짓이다. 빛도 잘 들지 않는 데다, 필요한 물건만으로도 집이 꽉 차기 때문에 매일 청소를 해야 겨우 사람 사는 곳 같아 보인다. 집의 반은 작은 앉은뱅이책상, 문 한 짝 밖에 되지 않는 옷장, 소파베드, 냉장고가 차지한다. 남은 공간은 사람 한 명이 들거가면 꽉 차는 화장실과 작은 주방으로 꽉 차는 그런 작은 곳이다.
작은 밥솥에 붙어사는 김서방은 작은 인간을 가장 아끼는데, 이 김서방은 작은 인간보다 먼저 이 집에 살고 있었다. 엄밀히 따지자면 몇 번 사라질뻔 했지만, 위기를 잘 모면한 덕에 이제는 이 집의 터줏대감처럼 잘 눌러살고 있다.
밥솥에 붙어사는 김서방 말고도, 옷장에 붙어사는 김서방, 앉은뱅이책상에 붙어사는 김서방을 포함해 이 집에 사는 모든 김서방들이 이 집의 주인인 작은 인간을 아낀다.
작은 인간은 산신동자를 닮았다. 매일 달큼한 주전부리들도 입에 물고 오물거리는 그 모습이 꼭 어린아이처럼 보인다. 처음 작은 인간이 집에 이사 왔을 때, 온 집안을 이리저리 뽈뽈대고 다니며, 먼지를 쓸고 닦는 모습이 예뻐 김서방들이 휘파람을 따라 불렀다. 작은 인간은 귀찮지도 않은지, 매일매일 김서방들이 붙어사는 물건들을 닦아주고 쓸었다. 그러니 어느 김서방이 이 작은 인간을 싫어할 수 있을까.
김서방들이 보는 작은 인간은 쳇바퀴를 돌듯이 늘 같은 일상을 보내는 귀여운 인간이었다. 아침 7시에 노랫소리가 들리면, 얼굴을 살짝 찌푸린 채 바로 화장실로 들어가, 찬물을 얼굴에 끼얹고 대충 고양이 세수를 한 다음, 수건을 얼굴에 문질거리며 걸어 나와, 앉은뱅이책상을 급히 펼쳐 전날 해놓은 먹다 남은 음식을 입에 대충 밀어 넣으며 우물거리다, 이내 고개를 꾸벅거렸다. 그러다 흠칫 놀라며 시간을 확인한 뒤, 아무렇게나 걸려 있는 옷을 대충 걸쳐 입고, 달려 나가기 일쑤였다.그러다 저녁 7시쯤엔 검은 봉지를 손에 들고 흥얼거리며 집 대문을 신나게 열고 들어왔다. 아침에 나갈 때는 꼭 망아지 같은 걸음 소리를 내더니, 저녁에 들어올 때는 폴짝폴짝 들어오는 발걸음이 작은 참새를 닮았다. 참새가 방앗간을 못 지나치듯, 작은 인간도 항상 방앗간을 들렸다 집에 오는지 손에는 항상 검은 봉지가 들려 있고, 그 안에는 주전부리 몇 개와 그날의 저녁거리가 늘 담겨있었다. 화요일은 닭강정, 목요일은 떡볶이, 금요일은 피자. 오늘 작은 인간의 찬거리는 무엇일지 내기하는 게 김서방들의 재미 중 하나였다.아침과 달리 저녁을 먹을 댄 눈빛에 생기가 도는 것이 김서방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만들었다.
입을 한참 동안 놀린 작은 인간은 앉은뱅이책상 위를 늘 깨끗이 닦았다. 이를 시작으로 주방에 가서 설거지를 하고, 빨래도 돌리고, 바닥도 쓸고 닦는 등, 집을 한바탕 치운 다음, 다시 앉은뱅이책상을 펼쳐 뭔가를 열심히 써 내려가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곤 치약을 칫솔에 묻혀 이를 닦고, 불을 끄고, 이불에 둘러싸여 잠에 드는 것이 작은 인간의 일상이었다.
추적추적 비가 오는 날, 앉은뱅이책상에 붙어사는 김서방에게 다른 김서방들이 작은 인간은 무엇을 쓰기에 늘 그리 흡족한 얼굴이냐고 물어보니, 오늘 먹은 저녁에 대한 감상, 내일 어떤 것을 먹을지 등, 시시콜콜한 이야기뿐이라고 했다.
그 이야기를 같이 들은 다른 김서방들은 낄낄거렸고, 그 후론 앉은뱅이책상에 붙어사는 김서방에게 매일매일 작은 인간이 쓴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조르기 일쑤였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작은 인간의 하루가 많이 달라졌다. 앉은뱅이책상에 붙어사는 김서방에게 오늘 작은 인간이 무슨 일이 있어야 물어봐도 소용없었다. 요즘 작은 인간은 그냥 아무런 이야기도 남기지 않은 채 죽어 잔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루, 이틀, 열흘, 몇 달이 지나자 집 안 꼴은 엉망이 되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만 있는 작은 인간을 다들 걱정스러운 눈으로 쳐다보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다 이번에는 오랜만에 집에 해가 비춘 날, 백주대낮에 앉은뱅이책상에 붙어사는 김서방이 다른 김서방들을 깨워댔다. 다들 인상을 구기며 무슨 일이냐고 신경질을 부렸다. 앉은뱅이책상에 붙어사는 김서방은 작은 인간이 오랜만에 이야기를 적은 걸 봤다고 했다. 작은 인간은 이 시간엔 집에 없는데 다들 어떻게 그 이야기를 봤느냐 물으니, 어젯밤에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며 이야기를 적어 내려가는 작은 인간 주위만 어찌할 바를 몰라 뱅뱅 돌다가 같이 그대로 잠이 들었는데, 살짝 잠에서 깨자마자 생각이 나서 그 이야기를 바로 뒤적거렸다는 것이다. 작은 인간은 이제 물건을 제자리에 두지 않고, 그냥 쓴 그 자리에 던져두기 때문에 이야기를 보기 쉬었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그제야 다른 김서방들도 인상을 풀며 앉은뱅이책상에 붙어사는 김서방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이야기는 이랬다.
회사 가는 게 지옥 같다. 아침에 겨우 눈을 뜨고 회사로 허겁지겁 달려가는 길부터 순탄치 않다. 꽉 끼는 지하철 안, 사람들은 날카롭고, 회사에 도착해서 열어 본 메일함의 내용마저 날이 서있다. 입사한 지 이제 6개월이 막 지났는데, 회사에선 내게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것 같다. 대표님은 늘 매출 얘기에 여념이 없고, 팀장님들은 항상 심드렁하면서 대표님 앞에서만 살랑거리고, 결국 돈을 벌기 좋을 것 같다는 명목하에 진행되는 여러 프로젝트의 시작은 언제나 사원들 몫이다.
처음 프로젝트를 맡았을 땐 열정이 넘쳤다. 내 커리어를 탄탄히 쌓을 수 있을 것 같았고, 첫 회사이다 보니 열심히 일하고 번 월급으로 맛있는 저녁거리를 사 오는 게 내 기쁨이었다. 좁은 집이지만 깨끗하게 쓸고 닦는 일도 소소한 행복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맡은 프로젝트마다 번번이 피봇이라는 이름으로 무산되고, 새로운 프로젝트들이 짠하고 등장한다. 시간의 한계에 부딪혀 야근을 하는 것도 이제 지쳤다. 이 야근이 의미 없는 일이란 걸 알았기 때문일까...
사실 생각해 보면 난 처음부터 이 회사를 엄청 가고 싶었던 것도 아니다. 그냥 대학생 때, 다들 취업준비를 하니까 나도 분위기에 휩쓸렸었다. 어떤 기업을 써야 할지 막막해서 진로 상담을 받았는데, 거기서 추천받은 곳 중 하나가 지금 다니는 ㅂㄹ기업이다. 그때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더 어렸을 때도 난 똑같았다. 그냥 남들이 하면 불안해서 따라 하며 겨우 그 발끝만 쫓아간다. 겨우 쫓아갔다고 생각이 들어 고개를 올리면 이미 다들 더 앞서 나가있다. 이렇게 자취해서 혼자 불 꺼진 집에 혼자 들어오는 것도 너무 힘들고, 치워도 치워도 항상 쌓이는 이 머리카락들도 보기 싫다. 그냥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싶다.
이야기를 들은 김서방들의 눈은 하나같이 동그래졌다. 작은 인간이 사라진다니, 밥솥에 붙어사는 김서방이 주인도깨비를 만나고 오겠다고 얘기를 꺼냈다. 다른 김서방들도 그러는 게 좋다며, 작은 인간 몰래, 밥솥에 붙어사는 김서방에게 일기 조각을 쥐어주었다.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주인도깨비를 찾아간 김서방은 낮도깨비가 붙어사는 요술항아리 하나와 땅의 기운을 담은 항아리 받침 하나를 들고 돌아왔다. 주인도깨비가 보낸 도깨비이니 다들 그러려니 했지만, 사실 낮도깨비 녀석은 여간 까칠한 것이 아니었다. 저 까칠한 녀석이 우리 작은 인간을 어떻게 도와준다는 거냐며 뒤에서 쑥덕거리는 김서방들도 있었다.
요술항아리에 붙어사는 작은 도깨비는 집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밥솥 옆 싱크대 안에 자리를 잡았다. 그 안의 다른 그릇들과 자연스럽게 뒤섞여 몸을 숨겼다.
그날 밤, 작은 인간은 변함없이 지친 기색을 하고 집에 돌아왔다. 현관에서 신발을 벗으려고 하는 찰나, 까칠한 낮도깨비가 발을 걸었다. 쿠당탕 큰 소리를 내며 넘어진 작은 인간이 꽤나 아픈듯한 신음 소리를 냈다. 다른 김서방들이 낮도깨비를 째려보며 뭐 하는 거냐고 따지려고 하는데, 작은 인간이 그대로 주저앉아 큰 소리를 통곡을 했다. 김서방들은 모두 작은 인간 주위로 몰려들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쩔쩔맸다. 그 사이 낮도깨비는 온 집안의 머리카락들을 모아, 우는데 여념이 없는 작은 인간 앞에 갖다 놓았다. 작은 인간의 울음소리가 잦아질 때쯤, 작은 인간이 머리카락을 발견하곤 손으로 몇 번 쓸어 담더니, 주위를 둘러봤다. 사실 집 안은 엉망이 된 지 오래였는데, 이 모습이 이제야 작은 인간의 눈에 들어왔나 보다.
울음을 그친 작은 인간은 한숨을 한번 내쉬곤, 집을 다시 쓸고 닦기 시작했다. 머리카락도 치우고, 밀린 빨래도 끝내고 나선, 오랜만에 밥솥에 밥을 안쳤다. 밥솥에 붙어사는 김서방은 밥이 최대한 맛있게 될 수 있도록 열심히 기운을 불어넣었다. 이 모습을 보던 낮도깨비가 키득거리며, 요술항아리 조리법을 바닥에 툭 하고 떨어뜨렸다.
(다음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