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콜렉터의 이야기/도깨비 이야기

김서방을 구슬피 울게 만든 남자 인간 이야기 1

주인도깨비 2024. 3. 12. 22:32

초록대문 집의 농에 붙어사는 김서방은 남자인간과 여자인간이 들어온 뒤로 항상 웃는 낯이다. 이 집에 사는 남자인간과 여자인간은 말간 얼굴에 항상 입꼬리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김서방의 입꼬리도 덩달아 같이 올라간 것이다.

 

남자인간과 여자인간, 그 둘은 늘 서로의 손을 잡고 온 동네를 하루가 멀다고 들쑤시고 나다녔는데, 그 초록대문 집에서도 별반 다를 바 없이 행동했다. 항상 뭐가 그리 좋은지 배슬 배슬 하며, 서로에게 재잘거리며 하루를 보내는 것이 그들의 일상이었다. 말씨며 생김새조차 닮아 있어, 그 동네 어린아이들은 그 둘을 쌍둥이라고 놀리기 일쑤였다.

 

 

 

사실 김서방이 이 집에 사는 남자인간과 여자인간을 좋아하는 데엔 남다른 이유가 있었다. 김서방은 초록대문 집이 처음 생길 때, 집주인 부부가 사 놓은 농에 붙어살고 있었는데, 한 인간 아이가 농에 올라타서 놀다가, 발을 헛디뎌 떨어지면서 머름칸에 있는 배꼽장식을 꼭하고 부러뜨렸었다. 인간 아이는 당황한 건지, 아니면 떨어지면서 아파 그런 것인지 대차게 엉엉하고 울어댔다. 그 모습을 본 인간 아이의 어미가 대충 배꼽장식은 농 천판 위 어딘가에 처박아 둔 채로 아이를 달래는데 여념이 없었다. 그리곤 그 농에 대해 까먹은 것인지, 아니면 쳐다보기 싫은 것인지 관심 한 톨 주지 않았다. 이후에 몇몇 인간들이 이 집에 살고 떠났지만, 아무도 이 배꼽장식에는 관심이 하등 없었다. 김서방은 천판 위의 배꼽장식을 매번 문지르며 누군가 이 배꼽장식을 알아채주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그러다 이 남자인간과 여자인간이 이 집에 이사를 왔는데, 매일 온 집안의 문을 활짝 열고 쓸고 닦으면서, 이 농에도 관심을 가졌다. 그들은 농에 붙은 배꼽장식이 떨어진 것을 알아채곤, 그것이 천판 위에 있다는 것 또한 단박에 알아챘다. 그리곤 어디론가 또 손을 잡고 나서더니, 접착제를 사 와선 배꼽장식을 제자리에 아주 단단히 철썩 붙여 놓았다. 이 외에도 집 안 곳곳을 돌아다니며 자잘하게 여러 가지를 고쳐나갔다. 매일 그렇게 집을 아끼니, 그 집에 붙어사는 김서방들은 남자인간과 여자인간을 아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모두가 그 두 인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면, 불그스레 생기 가득한 얼굴로 즐거워했다. 그렇게 그 둘의 이야기는 온 집안을 매번 가로질렀다.

 


 

그러다 하루는 남자인간이 여자인간의 모습과 초록대문 집의 모든 순간을 계속해서 찍어대는 날이었다. 여자인간이 남자인간 앞에 서서 까르르 웃어댈 때마다 남자인간은 엄지를 계속 치켜세웠다. 이 순간이 너무 소중하다는 듯이 그 여자인간의 배를 쓰다듬으며, 눈물을 글썽거리자 김서방은 빙긋 미소를 지었다. 여자인간이 귀여운 아이를 품에 안은 사실에 김서방은 잠시 고민하기도 했다. 그때처럼 작은 인간아이가 이 집의 모든 세간살이를 다 망가뜨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잠시 눈을 질끈 감았지만, 이내 이 여자인간과 남자인간의 아이라면 이 집안의 물건을 소중히 여겨줄 것이라고 다시 생각을 고쳐먹었다.

 

사실 김서방들은 이 사실을 이미 어느 정도는 눈치채고 있었다. 동해용왕과 서해용왕 딸이 혼인을 했는데, 이 둘 사이에서 낳은 딸아이가 하나 있는데, 이 여자아이가 생불왕 노릇을 하며, 아이를 잉태시키고 해산시키는 일을 맡았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그 여자아이가 천방지축이기는 해도, 아이를 많이 잉태시킨다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에 곧 이 두 인간 사이에도 새 생명이 깃들 것이라고 다들 생각하고 있었다. 남자인간과 여자인간, 그리고 그 둘은 모르지만 그 집안의 김서방들은 모두 같이 손꼽아 아이가 태어나는 날만 기다렸다. 곧 태어날 아이는 둘을 닮을 테니 얼마나 예쁘고 귀여울까, 김서방들은 아이가 조금 물건을 험하게 다뤄도 다치지 않게 뒤를 봐주자고, 예뻐만 해 주자고 의견을 모았다.

 

그렇게 한 달, 두 달, 네 달, 여섯 달... 시간이 계속 흘렀다. 여자인간은 꼭 자신이 아이가 된 것처럼 이것저것 생떼를 부리는 횟수가 늘어났고, 남자인간은 매번 진땀을 뺐다. 대게는 평범한 것들이었는데, 손톱이나 발톱을 잘라달라거나, 머리를 묶어달라거나, 팔베개를 해달라는 시덥잡은 이야기였다. 그런데 여자인간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석류 이야기를 듣고 나선, 남자인간에게 석류를 사 오라고 달달 볶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한 겨울에 석류를 사 오라는 여자인간에게 남자인간은 지금은 석류를 팔지 않는다며, 조금만 기다리면 먹을 수 있다고 매번 달래기만 할 뿐이었다. 사실 여자인간은 석류를 먹어본 적이 없지만, 라디오에서 나온 석류이야기에 온 신경이 석류에 향한 것이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사흘... 또 시간은 계속 흘렀다.

 


 

그런데 항간에 흉흉한 소문이 돌아 김서방들은 불안해했다. 동해용왕과 서해용왕 딸이 사고를 치고 다닌다는 소문이었는데, 인간 세상에 나온 그 딸은 생불왕 노릇을 하려 하였으나 일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탓에 아이를 잉태만 시키고 해산을 시키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아이와 산모 모두 위험에 빠져, 목숨을 달리 하는 경우가 많아져, 남자인간들이 개떼같이 용궁에 몰려들어 따지고 있다고 했다.

 

아뿔싸. 아니나 다를까. 이 초록대문 집의 여자인간도 배앓이를 심하게 하며, 남자인간에게 산파를 불러달라고 울부짖었다. 아이가 세상에 태어날 것이라고 생각했던 예정일보다 보름이나 이른 날이었다. 산파를 부른 남자인간은 넋이 나간채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산파는 정신 단단히 붙들어 매라며, 남자인간에게 아이의 배냇저고리와 따뜻한 물을 준비해 달라고 했다. 남자인간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잰걸음으로 따뜻한 물과 배냇저고리를 여자인간과 산파의 곁에 가져다 두었다. 그 모습을 본 산파는 이제 됐으니 잠시 나가 있으라고 했고, 여자인간의 얼굴은 주름지다 못해 구겨져 있었고 잘 익은 사과처럼 빨개져 있었다.

 

단말마 같은 비명과 동시에 아이가 태어난 것 같은데, 이상하리만큼 고요했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하나 나지 않았다. 남편은 문밖에서 계속 왔다 갔다 서성이며 산파에게 이 상황에 대해 물어보고 싶은 것을 꾹 참고 있었다. 산파의 당황스러운 신음소리가 이어 들리더니, 남편을 다급하게 불렀다. 이미 아이는 생을 달리 했고, 이제 여자인간의 목숨마저 위태로운 상황이기 때문에 얼른 의사를 부르라는 것이었다. 젖도 물려보지 못하고 허망하게 떠난 아이를 잃은 슬픔은 빠르게 날려버리고, 여자인간의 팔랑거리는 목숨을 잘 부여잡는 데에 집중해야 하는 남자인간은 허둥지둥할 뿐이었다. 여러 병원에 연락을 하고, 혹시 몰라 근처 병원에 가서 의사를 모셔올 요량으로 급하게 택시를 잡았다.

 

남자인간은 계속 긴장 속에 시간을 보낸 탓일까, 잠시 택시에서 정신을 잃고 잠이 들었다. 그러다 꿈을 하나 꾸게 되는데, 꿈에서 남자인간은 용궁 앞에 서있었다. 용궁 앞에는 자신과 비슷해 보이는 또래의 남자인간들이 쇳소리를 내며, 또 울먹거리며 그 용궁 문을 열려고 난리였다. 영문을 몰라 옆에 있는 인간을 붙잡고 물으니, 자신처럼 아이를 잃고 아내마저 잃었거나 잃을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며, 이 용궁에 사는 용왕의 딸이 이 사달을 낸 것이라고 대답했다. 다들 서슬 퍼런 눈으로 자신의 아내를 살려내라고, 또 아이를 데려가지 말라는 절절한 목소리가 온 사방을 뒤덮었다.

 


 

 

인간들은 가로막혀 들어갈 수 없었지만, 용궁 안의 모습은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용왕은 앉아서 울고 있는 딸에게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며 꾸짖고 있었고, 이를 본 옥황상제는 지부사천대왕을 불러 연유를 묻고 생불왕에 맞는 자를 추천하라고 했다. 이에 용왕은 자신이 잘 타일러 보겠다며 만류했지만, 옥황상제가 이미 많은 목숨을 앗아가고 이에 슬피 우는 저 소리가 들리지 않느냐며 용왕에게 큰 소리를 냈다. 아이를 점지했으면, 아이를 잘 해산해서 산모와 아이가 건강할 수 있게 도와야 하는데, 이를 모르는 채로 일만 잔뜩 벌렸으니 뒷수습을 어떻게 할 것이냐고 벼락같은 호통을 쳤다.

 

(다음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