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콜렉터의 이야기/도깨비 이야기

김서방을 구슬피 울게 만든 남자 인간 이야기 4

주인도깨비 2024. 6. 25. 21:52

남자인간은 잠시 그 자리에 멈칫 섰다. 귀가 찢어질듯한 고통스러운 괴성과 비명이 마치 남자인간의 것과 닮아있었다. 여자아이와 남자인간의 꼭 잡은 두 손은 어느새 축축해졌고, 여자아이의 시선은 남자인간의 얼굴로 향했다. 사색이 된 남자인간은 그 무엇도 하지 못한 채로 굳어버렸다.

 

그 모습을 본 여자아이의 이모라는 사람은 크게 호통을 쳤다.

"네가 지금 누구를 끌고 온 건지 알고 있느냐! 아주 배짱이 넘치는구나, 그래!"

 

여자아이는 영문을 모른채 남자인간의 손을 꼭 붙드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물기를 가득 담은 목소리를 작게 내뱉었다.

"죄송해요, 잘못했어요... 수습하려고 왔어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도와주세요..."

 

아이의 훌쩍거림 외에는 적막감만이 감돌았다.

억 겹 같은 시간이 흐르고, 이모라는 사람이 입을 다시 뗐다.

 

"거기, 용서할 수 있겠느냐? 지금 이 여자아이를?"

"..."

 

여자아이의 동공은 크게 커졌고, 그대로 털썩 주저앉은 채, 무릎을 꿇고, 손을 계속 비벼댔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진짜 죄송해요...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었어요... 죄송합니다..."

 

남자인간은 한 동안 멍하니 그 여자아이를 쳐다보다, 이내 손으로 얼굴을 거칠게 비볐다. 남자인간은 그 여자아이와 자신이 떠나보낸 여자인간의 겹쳐 보여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한 채, 새빨개진 여자아이의 볼만을 응시할 뿐이었다. 남자인간과 여자아이 사이에 그 이모라는 이가 끼어들었다. 아무 감정도 없는 듯한 얼굴과 거친 숨소리가 퍽 대조된 모습이었다. 그 이모라는 이는 여자아이의 발개진 뺨에 불을 지폈다. 깜짝 놀란 남자인간과, 운명을 받아들이고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순순한 여자아이. 남자인간은 여자아이의 손을 다시 잡은 채, 조그만 몸을 자신의 뒤로 숨겼다.

 

"어떻게 용서할 수 있을까요. 용서 못합니다."

"그래, 내 단단히 벌을 줄 요량일세."

"아니요. 그럴 필요없습니다."

"그게 무슨 소린가?"

"이미 이 아이가 벌을 받고 있습니다."

 

남자인간은 한숨을 푹 내뱉고,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그 이모라는 작자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전 이 아이를 평생 잊을 수 없을 겁니다. 평생 용서할 수 없을 거예요. 어찌 용서할 수 있겠단 말입니까. 그 햇살 같은 웃음을 가진 내 사람이, 그 사람을 꼭 닮은 아이를 품은 채로 떠나갔습니다... 평생 오지 못할 길을 떠났는데, 어찌 용서를 입에 올리십니까!"

"내 어찌하면 당신들의 마음이 풀리겠소? 벌을 충분히 받고 있다고 하니, 내 어찌할 도리를 모르겠는데 말이오."

"이 아이는 똑같은 실수를 또 할 것입니다. 이 아이의 실수를 멈추는 일은 그 일을 그만두게 하는 것입니다."

 

그 이모라는 작자의 한쪽 입꼬리가 그믐달처럼 올라갔다.

 

"호오... 그렇군, 그렇지. 맞는 말일세. 그럼 당신에게 그 일을 맡기면 어떠한가?"

 

여자아이는 처음으로 울음을 뚝 그쳤다. 누가 알아챌 틈도 없이, 여자아이가 남자인간을 자신의 뒤로 세차게 밀치며 정말 미안했다는 말을 외쳤다.

 


 

그 단발마 같은 비명과 동시에 남자인간은 눈을 떴다. 다시 집이다. 남자인간은 여자인간의 옷을 꽉진채로 숨을 헐떡거리며 몰아쉬었다. 축축하게 젖은 옷을 바라보며, 어디까지가 꿈이고 어디까지 현실인지 구분이 가지 않아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씁쓸한 마음을 어찌할 수가 없어, 그냥 계속 시간만 흘러보낼 뿐이었다. 몇 시간일까, 혹을 며칠, 아니 몇 달일 수도 있었다. 남자인간은 꽤 오랜 나날들을 그냥 멍하니 앉아만 지내다, 뭔가 깨달은듯이 대충 옷가지만 몇개 챙겨서 집을 홀연히 떠났다. 문도 잠그지 않은채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