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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콜렉터의 이야기/도깨비 이야기

김서방을 구슬피 울게 만든 남자 인간 이야기 3

주인도깨비 2024. 4. 24. 13:14

남자인간은 멍하니 요술항아리를 보며 만지작 거리다, 이내 설거지 더미 사이로 살포시 올려놓았다. 남자인간은 귀여운 것을 좋아하는 여자인간이 자신 몰래 사놓은 물건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를 여자인간에게 물어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곤 다시 생각에 잠겼다.

 

계속 밀려오는 여자인간의 생각에 고개를 가로젓고, 몸을 일으켜 뽀얗게 먼지가 앉은 집을 치우려 마음먹었다. 가장 먼저 문을 열었는데, 밖에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먹구름에 해가 가려 오전인지 오후인지 가늠도 되지 않는 날씨였다. 남자인간은 떨어지는 빗방울을 멍하니 쳐다보다, 또다시 고개를 가로지으며, 창문을 약간 열어두고 방 정리를 시작했다. 여자인간과 함께 하던 대로, 모든 물건을 제자리에 차곡차곡 놓고, 걸레에 물을 적셔서 방을 닦기 시작했다. 누가 더 빨리 방을 깨끗하게 닦는지 대결하던 여자인간과의 추억을 머릿속 저편으로 욱여넣으며, 여자인간의 흔적을 지우듯 온 집안의 먼지를 쥐 잡듯이 닦아댔다.

 

집 안에 널부러진 여자인간의 옷을 집어 들어 빨래를 하려고 걸어가다, 희미하게 나는 여자인간의 냄새에 남자인간은 또다시 주저앉았다. 창 밖의 거세지는 빗소리와 함께, 여자인간의 옷가지는 한 없이 구겨졌다.


 

어디선가 여자아이의 서글픈 울음소리가 들렸다. 주변을 둘러보니 으리으리한 옛날 대궐 집 같아 보였다. 남자인간이 소리를 따라 안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 보니, 귀여운 여자 아이가 주저앉은 채 엉엉 울고 있었다. 마치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여자인간이 어렸을 때 모습 같기도 해서 일단 아이의 옆에 털썩 주저앉아 물었다.

 

“뭐가 그리 서글퍼서?”

 

그러자 여자아이가 고개를 들어 곧 눈물이 떨어질 것 같은 눈을 가지고 물었다.

 

“누구세요?”

“그냥 지나가다가 소리가 들려서. 너무 슬프게 울길래.”

“그냥…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 너무 무서워서요.”

 

남자인간은 여자아아의 차림새를 보고 꽤나 입는 집안의 자식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대화를 하다 보니 여자아이는 생각보다 나이가 좀 있는지, 부모가 일을 가르치려고 한다는 것, 그리고 그에 대해 부담감을 느껴 실수를 계속한다는 것, 하지만 실수한 상태로 지금 도망쳤는 것까지 알아냈다.

 

“그래도 가서 잘못했다고 얘기하는게 좋지 않을까?”

“혼나면 어떡해요…”

“…? 지금이 제일 덜 혼날걸?”

“…?”

“생각해 봐. 자세한 건 모르겠지만, 빨리 수습하는 게 제일이야. 그리고 일을 수습할 땐 정신이 없으니, 의외로 안 혼날 수도 있고.”

 

여자아이와 대화를 하다보니, 남자인간은 여자인간을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났다.


(회상)

 

꽤 오래 전, 남자인간이 심부름을 끝내고 집에 가는 길, 흐느끼는 소리를 들려 가보니, 여자인간이 울고 있었다. 남자인간은 눈물과 콧물이 범벅된 여자인간의 얼굴이 꽤나 꼴사납다고 생각이 들었다. 여자인간이 인기척을 느낀 건지 매섭게 남자인간을 쳐다보며, 앙칼지게 누구냐고 물었다. 남자인간은 뭐가 서글프냐고 물었고, 여자인간은 더 크게 울어댔다. 여자인간의 숨소리가 일정해지자, 남자인간은 여자인간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왜 우느냐고.”

“혼날까봐.”

“왜 혼나?”

“마당에 엄마가 좋아하고 아끼는 꽃들이 있어. 근데 그 꽃에 물을 주려다가 발이 뒤엉켜 그 꽃 위에 넘어졌어.”

 

얘기를 자세히 들어보니, 여자인간에게는 언니가 한 명 있는데, 언니는 항상 모든 걸 잘했다고 한다. 여자인간은 항상 모든 일에 조금 느려서, 괜히 집에서 눈치가 보인다고 했다. 그래서 뭔가 잘해보려고 이것저것 할 때마다 늘 실수가 따랐고, 꽃에 물 주는 건 실수할 일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사고를 쳤고, 이번에야 말로 크게 혼날 것 같아 뛰쳐나왔다는 이야기였다.

 

“얼른 들어가.”

“이번엔 진짜 혼나고 말 거야. 저번에 이모가 엄마한테 내가 실수할 때, 매를 들어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거든.”

“…몇 대나 맞아야 하는데?”

“그건 몰라…그 얘기를 듣고 무서워서 도망쳤어. 그다음 얘기는 몰라.”

“음… 들어가서 죄송하다고 얘기하면, 덜 맞을 수 있지 않을까?”

“맞고 싶지는 않은데…”

“그럼 나랑 같이 가서 얘기할래?”

“너랑?”

“응. 나랑 같이 가서 맞으면, 덜 외로울 거야.”

 

그렇게 둘이서 손을 꼭 붙잡고 집에 들어서는 여자인간의 어머니는 처음엔 고개를 갸웃거렸고, 우물쭈물거리며 얘기하는 둘의 모습을 보고 배꼽을 잡고 웃었다. 그리곤 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안아주었고, 점심을 챙겨주고선 같이 장에 데려갔다. 장에 가서 같이 씨앗을 사고, 집에 돌아와 화단에 꺾인 꽃들을 뽑아낸 다음, 다 같이 씨앗을 심었다. 여자인간과 남자인간은 매일같이 그 씨앗을 들여다보았고, 꽃이 피어나는 것까지 봤었다.


 

남자인간의 말을 들은 여자아이는 한참을 고민하는 것처럼 보였다. 남자인간은 여자아이에게 집까지 가는 게 무서우면, 자기가 같이 가주겠다고 했다. 여자아이는 남자인간의 손을 꼭 잡고 집으로 향했고, 집 뒷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온 남자인간은 기시감을 느꼈다. 바깥에선 익숙한 통곡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