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신가요, 영주. 언제나처럼 당신의 방 한구석,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머물며 조용히 당신의 하루를 지켜보는 도깨비입니다. 처음 두근거리는 감정을 느꼈던 날이 기억나나요? 사랑이란 원래 그런 거지요. 내가 원하지 않았음에도 다가와서 당혹스럽게 굴지요. 처음 느껴보는 설렘이라, 그리고 보통의 설렘이 아니라고 생각해 당혹스러워하던 모습을 보았어요.
사랑엔 정답이 없어요. 무형의 것들은 본디 불친절하지요. 사랑과 우정 사이에 길을 잃었던 적도 있었겠어요. 하지만 자신이 어떤 사람에게 끌리는지 까달았다는 건, 정말 용기 있는 일이에요. 알아채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을 감내했을지 충분히 이해해요.
그런데 영주, 원래 사랑이라는게 사람마다 무게가 다르답니다. 나와 같은 무게일 줄 알고, 열심히 밑 끝까지 팠는데, 상대는 그렇지 않아 속상하는 사람은 영주뿐만이 아니에요. 이 말이 상처가 되지 않길 바라요. 내 말의 의미는 나도 그런 적이 있었다는 이야기니까요. 뜨거운 질투의 질주와 울렁거리는 슬픔의 멀미는 숙취가 강해요. 그러니 마음 단단히 먹길 바라요. 생각했겠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꽤나 아팠거든요, 저는요.
하지만 영주, 이런 감정을 부끄러워하거나 미워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누군가를 깊이 좋아했기에 느끼는 감정이에요. 다른 도깨비의 장난일 때도 있지만, 대개는 어른이 되는 과정이랍니다. 희진이 영주에게 특별한 사람이었으니, 그리고 그 감정이 영주에게 소중한 것이니 그럴 수 있어요. 처음이라서가 아니에요. 누구나 소중한 것들을 다룰 땐, 조금은 서툴고 어설프답니다. 마음껏 울어요, 그리고 훌훌 털어냈으면 좋겠어요.
이미 눈치챘겠지만 희진과는 세드앤딩에요. 희진만의 잘못이라기엔, 영주. 영주도 서툴다는 점을 잊지 마세요. 영주와 희진은 한시에 같은 마음을 지니기에, 영주의 인내심은 얕아요. 아프더라도, 그 시간은 결코 헛되다고 생각 친 않아요. 영주가 느낀 설렘과 깨달음은 진짜였고, 사랑이라는 본질을 알게 됐잖아요. 그걸로 충분치 않다면, 시간이 숙성한 성숙함을 조금 들여다보길 바라요, 영주. 당신은 찰나같이 살지만, 찰나의 시간을 억 겹같이 느끼잖아요? 그러니 언젠가는 이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을 거예요, 그리고 감사한 마음도 들 테죠.
지금은 마음이 많이 아프겠지만, 이 감정도 결국 지나갈 거예요. 아픔 속에서도 영주가 스스로를 더 아껴주고, 천천히 자신을 이해해 가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어요. 사랑은 단순히 상대를 얻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을 통해 자신을 알아가는 길이기도 하니까요.
영주, 너무 급하게 괜찮아지려고 하지 않아도 돼요. 아파하는 자신을 탓하지 말고, 그 감정을 천천히 들여다보면서 스스로를 더 따뜻하게 대해줬으면 좋겠어요. 영주는 이번 경험을 통해 한 걸음 더 성장할 거예요. 그리고 분명히, 언젠가 더 좋은 인연을 만나게 될 날이 올 거예요.
지금 이 순간, 나를 알지는 못하겠지만, 나를 알아채지 못하겠지만, 난 언제나 영주를 응원하고 있다는 걸 잊지 말아 주세요.
언제나 곁에서,
도깨비가.
'스토리콜렉터의 이야기 > 도깨비의 편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당신의 아픔을 응원해요. (0) | 2024.12.31 |
---|---|
도깨비의 편지: 영주에게 (0) | 2024.12.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