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은 마치 한여름의 첫 비처럼, 예고 없이 찾아옵니다. 마음속 깊은 곳, 아직은 서툴고 어설픈 곳을 적셔놓고는, 금세 자취를 남기고 사라지곤 하죠. 그 순간은 모든 것이 처음이어서 찬란해요. 사소한 행동 하나에도 심장은 마라톤을 완주한 사람처럼 두근거리고, 구름을 둥둥 떠다니는 기분에 하루종일 미소가 입가에 번지며, 계속 그 사람만이 생각나게 됩니다.
첫사랑, 그 자체로 알 수 없는 감정의 깊이는, 아직도 끝을 알 수 없는 밑바닥에 있어요.
아련한 기억의 조각들
돌이켜보면 때로 차란한 빛으로, 때로는 흐릿한 꿈처럼 남아 있어요.
함께 걷던 길, 같은 하늘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을 아끼던 순간들.
말을 먼저 꺼내는 사람이 지는 게임이라도 하듯 줄다리기하다,
괜히 옆얼굴만 힐끔거리곤 했습니다.
그러다가도 한 줄기 햇살이 우리 사이를 갈라놓기라도 할까 봐,
냉큼 시답잖은 이야기를 계속 꺼내놓았어요.
별로 재밌지도 않은 이야기였는데,
그 이야기마저 없으면 지금 이 시간이 끝나버릴까 봐 말이죠.
설렘 뒤의 불안
설렘 뒤에 마음속 뿌리 깊은 곳에 자리 잡은 불안감이 계속 고개를 듭니다.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내가 그 사람의 마음을 알아차릴 수 있을지,
그 사람에게 나는 어떤 존재인지,
아까 했던 말은 무슨 뜻인지,
끝없는 고민에 밤과 함께 낮도 깊어만 갑니다.
누군가에겐 미완성의 꿈으로 남기도 하지만,
미완성이 가장 아름다운 결말처럼 보이는 건,
아마 제 완성이 못나 보이기 때문이겠죠.
찌질한 순간의 기억
아마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당시의 전 꽤나 찌질했습니다.
한 마디에 울컥하고 땅굴을 파기도 하고,
괜히 사소한 행동에 윽박을 지르기도 했어요.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깎이고 깎여 나가다 그렇게 작아져갔습니다.
잦은 말실수를 연발하다 결국 날 선 말을 하고 도망쳐버렸어요.
계속 반복되면 상대방이 뒷모습을 보여줄까 봐, 미리 선수를 쳤죠.
기억 속의 나와의 대화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때의 나는 어렸습니다.
그 기억들이 마음속에 아물어가며 비로소 깨달았어요.
그 설렘도, 불안도, 찌질했던 순간들도
모두 나라는 사람의 일부였다는 것을.
청춘드라마의 멋진 주인공이 되고 싶었지만,
주인공 친구만도 못했습니다.
지금은 그 기억들이 지금의 내가 성장하는 데
꼭 필요한 조각이었음을 느끼지만요.
어쩌면 그 시절의 우리는 모두 찬란했을 겁니다. 순수한 만큼 상대를 배려할 줄 몰랐고, 그 시작과 끝은 결국 상대가 아닌 나를 위한 선택만을 했었으니까요. 저는 그랬습니다. 그럼에도 그 사이의 순간들이 아련하고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은, 지금의 내가 할 수 없는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이기 때문일까요.
첫사랑의 기억은 그저 추억으로 남기에는 너무 찬란합니다. 우리가 사랑을 배웠던 첫걸음마의 흔적이자, 그 순간으로 아직까지 걸어 나가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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